박이소의 온대주의

전용석/ 작가

풀에서 박이소의 토탈 인스털레이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과거의 다소 단편적인 인상들을 벗어나는 어떤 종합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한국적 인스털레이션의 한 전범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는데, 그것은 민속적 상징을 이용해먹거나, 주변부적 정서(궁서체, 간장통)를 상징화하거나 하지 않고서도 무언가 '한국적'인 것을 느끼게 해준다. 좀 교과서적으로 말해 한국적인 것을 재현하지 않고서도 한국적인 감정을 물씬 풍긴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행위를 통해' 무언가를 보여주는 방식이라 할 만하다. 그러니까 관객은 전시장 공간을 멀리 보거나, 기웃거리거나, 엿보거나 하는 행위를 통해서 그 추상적이기 짝이 없는 '한국적임'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헬리오 오이티시카는 자신의 토탈 인스털레이션에 '열대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박이소의 방식에는 '온대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만도 하다. 작품의 제목이나 사용하는 이미지나 어느 경우에도 명확한 무언가를 말하고 있지 않으므로 위와 같은 총체적 인상이 바로 그가 노린 무엇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총체성, 혹은 추상성이란 무엇일까?
이 전시는 또 다른 측면에서 중요하게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최정화가 80년대 이후 변화하는 어떤 정서를 포착해 낸 것처럼, 박이소는 좀 다른 차원에서 중요한 '정서 구조'의 변화를 포착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박이소의 전시를 보면서 많은 후배 작가들이 '저거 바로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인데' 라고 통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공약수에 이름을 붙여 본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작업은 비판적이면서도 비판에 매몰되지 않고, 퍽이나 노골적으로 상징적이면서도 상징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흔히 '미술은 문학과 다르다'라고 말할 때 바로 그 다른 점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좀 거칠게라도 이유를 꼽아 보자면 '사물'의 힘을 잘 이해하고 다루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물'이란 단순한 의미의 오브제가 아니라, 차라리 '공간'에 가까운 의미이다. 사물과 공간에 무의식적으로 부착되는, 시간이 흐르면서 쌓여가는 독특한 경험의 방식, 이런 요소를 최대한 활용하는, 그야말로 '미술'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벽 - 여기서는 아마 공간 분할의 형식이 중요할 것이다. 풀의 공간을 철저하게 '벽'을 새롭게 지각하는 방식으로 분할해놓은 구조. 그러니까 벽면을 - 공간의 '한계'를 다시금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분할하고 있다. 한쪽에는 거울을 통해, 다른 편에서는 벽에 바짝 붙인 비닐 칸막이를 통해 벽을 의식하게 만든다.

공간의 질적인 차이들 - 거울이 설치된 방은 바라보라고 만든 방이다. 일종의 포지티브 공간. 비닐로 구획된 공간은 여분과 같은, 일종의 네거티브 공간. 그리고 그 사이에 합판그림과 상자들, 월드 의자와 같은 오브제들이 있다. 그렇게 삼중 구조. 분할된 각 공간들은 질적으로 다른 기능을 함으로써 전시장에 밀도를 준다. 만약 똑같이 포지티브들, 혹은 네거티브들을 만들었다면 무언가 반복되는 느낌 때문에 밀도가 떨어졌을 것이다.

형식 - 물론 그도 기본적인 룰을 지킨다. 거울이 설치된 방의 격자나 비닐 통로의 구조. 소포 박스 등 기본적인 그리드를 존중하고 받아들인다. 쓸데 없이 곡면을 만들거나 장식을 부리지 않는다.

헐거움 - 그리 두껍지 않은 각목들의, 역시 대강 박아 넣어 만든 것 같은 구조물, 그리고 소포지로 포장한 상자들과, 반투명 비닐, 리놀륨 장판, 느슨하게 기대어 놓은 합판, 벽과 합판에 역시 가벼운 압력으로 그렸을 것 같은 그림들.

대충 이렇게 본다면, 박이소의 전시가 시적인 여유를 주는 것은 재료들 자체의 물성, 그리고 재료를 구사하는 방식이 주는 헐거움 때문이고, 그것이 그냥 물렁한 감상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공간을 상당히 밀도 높은 경험 공간으로 구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딱 그 만큼의 판타지와 딱 그 만큼의 리얼리티 - 통상적인 전시의 디스플레이에 비해 작가가 구성한 공간에서 발생하는 '역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가 요코하마에 활용한 방법이기도 하고 멀리는 마이클 아셔와 같은 이들이 주목한 부분이기도 한데, '벽'은 위와 같은 연출에 힘입어 공간을 기능적으로 분할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스크린'으로 변화하면서 판타지를 연출한다. 우리는 어떤 사물이나 공간의 극한, 즉 한계와 대면할 때 그것을 곧이 곧대로 긍정하지 않는다. 극한을 '무한'과 비슷한 개념으로 바꾸어 지각하게 되고 이 무한이란 결국 판타지가 투사되는 그런 공간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리얼리티인데 바로 그 판타지의 존재 때문에 우리가 '그 시간에 거기 있음'에 대한 이유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은 왕복하며 얇게 진동한다.

방금 극한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박이소의 개성이 드러나는 부분이 여기이다. 개념적으로는 극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차원을 그는 전혀 극한의 느낌이 없이 대하게 만든다. 한국적 정서로 이것을 '철이 난', 혹은 '성숙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완곡어법에 능한 한국인들의 정서는 바로 이렇게 드러난다. 앞에서 공간을 기능적으로 삼분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것도 역시 실제 전시장에서는 동선 때문에 명확히 인지되지 않는다. 이렇게 형식을 뒤집는 방식으로 말을 할 때도 완곡어법을 구사하는 것. 이것이 그가 포착하는 인간학적 차원이다.

거울이 설치된 방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그 공간은 '가짜로' 넓어진 공간이다. 그 가짜됨이 공간을 허구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우리는 시쳇말로 공간의 '타자성'을 가시적인 차원에서 확인하게 된다. 비닐로 벽을 세워 벽에 붙여놓은 공간도 같은 방식으로 동작한다. 박이소에게 있어서 독특한 것은 그러한 비판이 향하는 방향이다. 거울은 전통적으로 주체 개념과의 관련하에 사용되었지만 그의 거울은 관객이 자신의 존재/비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에 놓여있지 않다. 거울이 겨냥하는 것은 주체가 아니라 그냥 공간이다. 낙서와 같은 벽 그림 역시 그런 의미일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나는 완곡어법이라 말한 것이다.

그래서 그 전시 전체가 하나의 은유적 구성인 것 같으면서도 그냥 리터럴한 것 같기도 한 애매모호성이 파생된다. 은유라고 본다면 프리드적 의미의 '순간성'으로 향하는 의미의 논리적인 압축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박이소의 은유는 그들의 맥락에서 합리주의적인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완전히 비인격적인 경험에 자신을 내맡기는 리터럴한 방식은 또 아니다. 인간적 스케일이나 구성의 거부는 여기서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모호함은 전시가 결국 하나의 정치적인 차원으로 변화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위와 같은 개념적 분석을 듣는다면 누구나 한 번쯤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왜 꼭 그래야 해?' 요즘 많이 듣게 된 반문 같지 않은가? 이런 질문을 당연스레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바로 그것이 내가 앞에서 박이소가 포착했다고 말한, 변화하는 정서 구조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과거의 유엔 성냥 작업이 보여주었던 과격한(?) 방식을 벗어나 그가 터득한 중요한 화두일지도 모른다. 이런 방식의 정치성은 지금까지 우리가 명확히 의식해온 그런 정치성은 아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사회성의 형식'이 존재한다. 작가가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사회적 흐름과 그에 대비되는 주체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 거울을 설치하는 시선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관심은 어떤 사회적 전형을 관찰하고 그와의 사소한 감각적 차이를 성찰하고 명확히 함으로써 재사회화되는 것에 있다. 거대한 사회적 흐름은 알아서 가라고 하고, 혹은 가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면서 그 잉여의 차원을 사회화하려는 태도이다. 아시아적 태도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왕조나 정권의 교체와 민중의 정서 변화가 아무런 연관 없이 따로 논다는 그런 인식. 우리의 경우 폭력적 근대화의 기억은 그것이 언제나 이식된 것이라는 인식과 결부됨으로 인해 본격적인 사회적 담론의 장과는 다른 이상한 정서적 사회성을 강화시켰다. 내가 잉여의 차원이라고 부른 것은 바로 이 차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차원에서 공간은 개인에게 할당되는 것이 아니라, 임시적으로 점유하는 것이다. 임시성은 순간에 경험을 압축하거나 반대로 끝없이 변하는 섬망 상태의 경험 사이에 놓이는 어정쩡한 위치이다. 관객이 박이소의 전시장을 기웃거리면서 어떤 갈등을 느꼈다면 그것은 필시 자신이 어색한 지위에 처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것들이 '한국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차원들이다. 그의 연출은 좁은 공간을 기능적으로 변형시키면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왜곡을 일종의 정치적 차원으로, 불가피한 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불가피함이야말로 최상위의 권력이다. 그래서 그림에 Natural Drawing이라는 제목을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세잔의 터치가 관객과 하나의 시소 게임을 하면서 관객의 의식을 궁극적으로 존재론적 와해를 불러 일으키는 정치적 차원으로 이끌어 가듯이. 이런 작업들은 궁극적 질문으로 수렴된다. ‘당신은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혹은 '당신은 당신이 허깨비임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등의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박이소의 질문은 '당신은 진정으로 어정쩡한 존재임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가 될 터이다. 그의 작업을 한국 정서와 결부시키는 나의 독해는, 그 어정쩡한 존재가 한국 사람들의 주요한 정서 구조를 은유하고 있다고 보는 경우에 한해서 성립된다.

별다른 개성이 없어 보이는 '온대성'(그러나 실제로 한국은 계절별로 특성이 뚜렷한, 놀라운 대립을 보여주고 있지만), 혹은 주변성에 대한 긍정. 나는 이것이 그의 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주변성을 주요한 쾌락의 모티브로 재전유하려는 최정화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고, 어찌 보면 대다수 한국인의 정서는 최정화적이라기 보다는 박이소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술의 모든 문제는 '정말?'이라는 반문으로 열려있다. 이 열린 공간을 긍정해야 한다. 비판적이어야 하고, 정확해야 한다는 자의식은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후기 : 2001년 12월에 쓴 글을 거의 2년 뒤에 읽으면서 내가 당시의 시공간으로부터 멀리 떠나와 있음을 느낀다. 그 2년을 난 서울의 구석들을 답사하거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과 의식을 통해 한국 사회의 폐쇄성을 경험하고, 또 그 반작용으로서 현실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미술을 상상하며 지냈다. 현장의 경험은 그가 말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총체화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시 박이소로부터 받은 자극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고도 느낀다. 내가 박이소의 작업을 읽으면서 감지했던 잉여적인 사회성의 형식은 ‘심리지리’나 ‘표류’의 개념을 재구성하는 작업에도 영향을 주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난 청계천을 통해 그 잉여적인 사회성을 다시금 생각하고는 했는데, 놀라운 것은 박이소 토탈 인스톨레이션 공간의 원리에서 보듯이 물질적 재료에 대한 즉물적 감각이라든가 기능이 직접적인 구성의 원리가 되는, 소위 ‘팍투라’에 대한 경험 등이 존재하는 시공간은 언제나 ‘잉여적’이라는 점이다.
박이소와 같은 선배세대들에게는 그러한 부등가 교환의 원리를 재발견하고 예술의 형식 내에 보존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반대로 글의 말미에서 나는 ‘열린 공간’이라는 말을 일종의 공공성의 개념으로, 우리의 경우 예술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실험하는 것을 넘어 예술과 삶의 창조적 재연결이라는 과제 앞에 서있다는 의미를 담아 사용했다는 것을 부언해 둔다. 2003. 11